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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 부터 _정세랑

어흥 2021. 2. 9. 22:31

창작의 욕구와 자기 파괴의 욕구가 다른 이름을 가진 하나라는 것이 언제나 나를 슬프게 했습니다. 
20세기는 끔찍한 세기였고, 끔찍한 걸 지나치게 많이 목도한 이들은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버리기도 했습니다.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자살률이 높다지요? 
한국 예술가늘의 자살률은 아마 그보다 더 높을 겁니다.
언니들, 친구들, 동생들...... 거의 격년으로 한 사람씩을 잃었습니다.
예민해서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는 건 압니다.

파들파들한 신경으로만 포착해낼 수 있는 진실들도 있겠지요.
단단하게 존재하는 세상을 향해 의문을 제기하는 모든 행위는 사실 자살을 닮았을 테고요. 

그래도 너무 많이 잃었습니다.
다 포기하고 싶은 날들이 내게도 있습니다. 아무것에도 애착을 가질 수 없는 그런 날들이.
그럴 때마다 생각합니다. 
죽음으로, 죽음으로 향하는 내 안의 나선 경사로를 어떻게든 피해야겠다고.

구부러진 스프링을 어떻게든 펴야겠다고.
스스로의 비틀린 부분을 수정하는 것. 
그것이 좋은 예술가가 되는 길인지는 몰라도 살아있는 예술가가 되는 일임은 분명합니다. 
매혹적으로 보이는 비틀림일수록 그 곁에 어린 환상들을 걷어내십시오.
직선으로 느리게 걷는 것은 단조로워 보이지만 택해야 하는 어려운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