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잊기좋은 이름_김애란

어흥 2021. 2. 4. 23:35

'제일', '가장'과 같은 최상급을 쓰면 즐거울 때가 있다. 그때 나는 '무척' 진실한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종종 다른 방법을 놔두고 단순하고 무능한 부사를 쓴다.
그의 무능에 머리를 기댄다. 
부사는 점잖지가 않아서 금세 낯빛이 밝아진다.
조금 정직한 것도 같다. 
부사는 싸움 잘하는 친구에게 다가가 팔짱을 끼는 중학생처럼 과장과 허풍, 거짓말 주위를 아찐 거린다.
나는 거짓말을 쓰되 그것이 거짓말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고심하다 겨우 부사 몇 개를 지운다.
누군가는 문장론에서 '부사는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라 썼다. 
만일 지옥의 특징 중 하나가 '지루함'이라면 그것은 반만 맞는 표현일지 모른다.
부사는 세계를 우아하게 만들어 주지는 못하지만 흥미롭고 맛깔나게 해 준다. 
그러니 부사가 있을 곳은 지옥이 아니라 이 말도 안 되는 다급하고 복잡한 세상, 유려한 표현 대신 불쑥 부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는 속세, 그 세속에서 쓰이는 소설 안일 것이다.
부사를 변호했다. 기분이 '굉장히' 좋다.